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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건국대통령 이승만 장로 편 - 民族 死活의 箴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제1596호]  2018년 5월  26일]


건국(建國)과 호국(護國) 대통령 이승만을 보내는 부국(富國) 대통령 박정희의 조사(弔辭)는 거인을 향한 거인의 마지막 인사였다.

돌아보건대 한마디로 끊어 파란만장의 기구한 일생이었습니다. 과연 역사를 헤치고 나타나 자기 몸소 역사를 짓고 또 역사 위에 숱한 교훈을 남기고 가신 조국 근대의 상징적 존재로서의 박사께서는 이제 모든 영욕(榮辱)의 진세인연(塵世因緣)을 끊어버리고 영원한 고향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일찍이 대한제국이 기울어가는 것을 보고 용감히 뛰쳐나와 조국의 개화와 반제국주의 투쟁을 감행하던 날, 몸을 철쇄(鐵鎖)로 묶고 발길을 형극(荊棘)으로 가로막던 곳은 오히려 선구자만이 누릴 수 있는 영광의 특전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일제의 침략에 쫓겨 해외의 망명생활 30여 성상(星霜)에 문자 그대로 혹은 바람을 씹고 이슬 위에 잠자면서 동분서주로 쉴 날이 없었고, 또 혹은 섶 위에 누워 쓸개를 씹으면서 조국 광복을 맹세하고 원하던 것도 그 또한 혁명아 만이 맛볼 수 있는 명예로운 향연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집권 12년의 종말에 이르러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이른바 정치적 과오로 인하여 살아서 역사의 심판을 받았던 그 쓰라린 기록이야 말로 박사의 현명을 어지럽게 한 간신배들의 가증한 소치였을망정 구경(究竟)에는 박사의 일생에 씻지 못할 오점이 되었던 것을 통탄해 마지 못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헤아려보면 그것이 결코 박사의 민족을 위한 생애 중에 어느 일부분일망정 말살하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하며, 또 일찍이 말씀하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귀국 제일성(第一聲)은 오늘날 오히려 이 나라 국민들에게 들려주시는 최후의 유언과 같이 받아들여져 민족 사활의 잠언(箴言)으로 삼으려는 것입니다. 어쨌든 박사께서는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세기적 비극의 주인공이었던 것을 헤아리면 충심(衷心)으로 뜨거운 눈물을 같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마는 그보다는 조국 헌정사상에 최후의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어린 양의 존재가 되심으로써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위인이란 거룩한 명예를 되살리시고 민족적으로는 다시 이 땅에 4.195.16과 같은 역사적 고민이 나타나지 않도록 보살피시어 자주 독립의 정신과 반공 투쟁을 위한 선구자로서 길이 길잡이가 되어 주시기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말미암아 박사로 하여금 그토록 오매불망(寤寐不忘)하시던 고국 땅에서 임종하실 수 있는 최선의 기회를 드리지 못하고 이역의 쓸쓸한 해빈(海濱)에서 고독하게 최후를 마치게 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생전에 손수 창군(創軍)하시고 또 그들로서 공산 침략을 격파하여 세계에 이름을 날렸던 그 국군 장병들의 영령(英靈)과 함께 길이 이 나라의 호국신(護國神)이 되셔서 민족의 다난(多難)한 앞길을 열어주시는 힘이 되실 것을 믿고 삼가 두 손을 모아 명복을 비는 동시에 유가족 위에도 신의 가호가 같이 하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이승만이나 박정희나 정확하기로 정평이 난 인물들이다. 필자의 소견으로, 박정희의 글은 이승만에 대한 정확한 평가이다. 생각해보면 파란만장한 생애였고 장엄한 애국이었다. 말년(末年)의 실정(失政)은 거대한 생애의 일부였을 뿐, 그것으로 전체를 덮을 수는 없다.

기독교인이 아니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기독교적인 용어로 이승만을 적절하게 표현했다. 조국을 위해 최후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어린 양. 실로 그가 져야 했던 십자가는 무겁고 고통스러웠다. 한성 감옥의 고문, 유학 시절의 가난, 기약 없는 망명 생활, 전국의 과정에서 뒤집어썼던 오명(汚名), 처참한 전쟁, 약소국의 서러움, 말년의 고통스러운 실책, 태평양에서 저물어야 했던 최후의 고독. 한 개인이 지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십자가였다. 조국을 위한 거대한 십자가를 지고 이승만은 신앙과 애국이 길을 끝까지 갔다.

양자(養子) 이인수가 기억하는 이승만의 유언은, 그가 해방 후 국민들에게 자주 설교했던 신약성경의 갈라디아서 51절이었다. 세상살이를 마무리 짓는 마지막 세월에 건국 대통령은 날마다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너무나 늙고 지쳤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민족을 위해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게 하소서.” 마지막 수난까지, 그의 기도에는 우리 민족이 살아있었다.

 

왜 이승만인가?

다시 묻는다. 왜 이승만인가? 김길자의 대답이 참으로 적절하다.

이승만 만큼 경쟁력 있는 브랜드도 없다. 그의 삶 자체가 수백 편의 드라마, 웅장한 오페라다. 이승만 정신은 한민족의 역사적 재산이며 세계 약소국가의 독립 모델이다. 더구나 전 세계에 잘 알려진 전설적인 이름 싱멘 리아닌가.”

너무나 경쟁력 있는 브랜드, 이승만은 뛰어난 아이템이다. 동양과 서양이, 한국과 세계가 그의 폭넓은 인생을 통하여 운명적으로 만났다. 자주와 동맹이 치열하게 대결하면서 거대한 용광로 같은 90년 생애에 담겨 녹아들었다. 일과 사랑이, 신앙과 애국이 그의 빛나는 인격 안에서 융합되었다. 이승만은 여전히 살아있다.

첫째로 이승만은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세계화 시대의 인간형이다. 이문열의 소설 황제를 위하여에 붙은 작가의 말이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는 읽으면서도 사서삼경은 낡았다고 읽지 않고, 보들레르에게는 감탄하면서도 이하(李賀)를 아는 이는 드물다. 니체에게는 심취하면서도, 장자를 이해하려 들지는 않고, 로버트 오웬은 알아도 허자(許子)는 낯설어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우리가 세워야 할 문화의 유형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전통에 깊이 뿌리내린 동양적인 것과 새롭고 활기찬 서구적인 것의 조화에 있지, 어느 한편에 대한 일방적인 배척과 다른 편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이나 몰입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문열 특유의 현학(衒學)과 교양주의가 물씬 풍겨나는 문장이다. 벌써 이십 여 년 전의 글이라, 지금과는 차이가 있다. 그때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나 보들레르나 니체나 로버트 오웬은 친숙하고, 사서삼경이나 이하나 허자는 낯설었는지 몰라도, 지금은 이문열이 언급한 모두가 다 낯설어진 시대이다. 책을 읽지 않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의 결론은 아직도 유효하다. 우리가 세워야 할 문화는 여전히 동양과 서양의 조화에 있다. 한쪽에 대한 일방적인 추종이나 다른 한쪽에 대한 일방적인 배타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호 목사 <신안산대 겸임교수거룩한 대한민국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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