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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 최흥종 목사의 행적을 재조명하다
[[제1591호]  2018년 4월  21일]

광주 최초의 기독교신자요, 최초의 목사이자, 장로이며,

최초의 빈민구제활동가였던 오방 최흥종 목사의 행적을 재조명하다

총회 한국기독교사적지 35호 최흥종 목사 기도처 지정 

 

명예욕, 물욕, 성욕, 식욕, 종교적 독선. 이 다섯 가지 욕심을 버린다는 뜻으로 오방(五放)’* 이라 스스로 이름 짓고 홀연 무등산으로 들어간 최흥종 목사(사진)는 초라한 움막에서 기거 하며 산속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외지와 연결도 잘 닿지 않던 산속에서 마을을 이루며 살던 사람들은 최 목사로부터 성경말 씀과 예수에 대해 전해 듣고 하나둘 모여들었 고, 어느덧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 다. 몇 년 후 최 목사가 머물던 움막이 철거되 자 목사는 또 다시 복음을 전하러 떠났고 남 은 마을 사람들은 계속해서 모여 예배드리다 결국 교회를 세웠다. 최흥종 목사가 뿌린 씨 앗이 맺은 열매 중 하나다.

전라남도 광주 무등산 속 증심사라는 절 과 또 다른 사찰을 지나 산을 오르다 보면 오 방수련원이라는 간판을 달고 소박한 십자가 를 세운 작은 교회가 나온다. 교회가 있기에 는 깊은 산속인데다 그 공간이 무척이나 협소 한 이곳은 바로 최흥종 목사가 전한 복음으로 모였던 사람들이 세운 교회, 오늘의 신림교회 가 처음 있던 자리이다.

지난 412, 본 교단 총회(총회장 최기학 목사)는 이 오방수련원을 한국기독교사적지 제35호로 지정하는 예식을 거행했다. 이 자리 에 모인 사람들은 오방수련원이 한국기독교 사적지로 지정된 것을 축하하는 한편, 최흥종 목사라는 인물에 대한 교회사적 연구와 재조 명의 필요성에 입을 모아 공감했다.

오방 최흥종(崔興琮, 188054~1966 514) 목사는 기독교 목회자이자 독립 운동가이며, 교육가, 한센병과 결핵퇴치운동 가, 빈민운동가이다.

25살 회심한 후 광주지역의 모교회인 북문 안교회 초대장로가 되었고, 평양신학교를 졸 업한 후엔 광주 최초의 목사가 되어 북문밖교 회(현재 중앙교회) 분립 직후 초대목사로 시 무했다. 양림교회 분립 이후엔 다시 모교회인 금정교회(당시 북문안교회)에서 시무하였고, 1924년 전남노회 노회장 선출, 시베리아 선교 사 활동, 제주 모슬포교회 담임목사로 시무, 제주노회 초대 노회장으로도 일했다.

그의 활동은 교회 밖에서도 활발했다. 광주 제중병원에서 우일선(R. M. Wilson) 선교사와 보위렴(W. H. Forsythe) 선교사의 의료선교를 도우며 한센병 환자의 자활을 위해 헌신적으 로 봉사했고, 자신의 땅 1천여 평을 기증해 한 국 최초 한센병 환자 요양소(광주 나병원, 1926 년 여수로 옮겨 애양원으로 이름 바꿈)를 마련 키도 했다. 3·1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옥고를 치 르기도 했으며, 1920년 광주 YMCA를 창설해 기독청년 운동에도 앞장서고, 1927년엔 신간회 전남지회장을 맡아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했 고, 해방 후 1945년엔 전남 건국준비위원회 초 대위원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맡고 있던 모든 역할을 내려놓고 스스로에게 사망선고를 내린 그는, 자신에게 오방이라는 이름을 짓고는 복음을 전하며 사회적으로 냉대를 받던 한센병 환자 들과 결핵 환자들, 빈민들을 돕는 일에 여생을 바친다. 또 무등산 기슭에 삼애학원을 설립해 농촌계몽과 지도자 양성에 헌신하기도 했다.

1964년 유언장을 발표한 이후 1966년 서거 까지 스스로 죽음을 준비했던 과정도 예사롭 지 않다. 그의 장례는 광주사회장으로 거행됐 고, 나라에서는 국민훈장을 수여했다.

최 목사가 기도하던 무릉산 오방수련원에 대한 사적지정예식이 있던 지난 12, 모인 사 람들이 전하는 오방 최흥종 목사에 대한 일 부 메시지만으로도 그의 엄청난 행적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오방수련원사적지정을 추진해 온 전남노 회(노회장 남성현 목사)와 신림교회(이전규 목 사 시무), 역사위원회및삼일운동백주년기념 사업위원회 관계자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 운데 열린 이날 예식은 감사예배와 지정식, 축하와 인사, 제막식 등 총 4부로 진행됐다.

전남노회 역사위원장 정순원 목사가 인도한 예배는 광주제일교회 송건 장로의 기도, 전남 노회 역사위원회 서기 오만균 목사가 골로새 서 31~4절 봉독, 신림교회 시온찬양대의 찬 양, 전남노회장 남성현 목사가 숭고한 신앙의 발자취제하 설교, 전남노회 직전노회장 조원 섭 목사의 축도 순으로 드렸다. 남성현 목사는 성경말씀을 전하며, “숭고란 거룩이란 뜻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달라야 하지 않나. 최흥 종 목사님은 다른 삶을 사셨다. 이 광주 도성에 서 작은 예수로 오장육부 사지백체를 다 주님 을 위해 쓰셨다. 숭고한 이 삶이 오늘 우리에게 교훈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정식에선 총회역사위원회 전문위원 손산 문 목사가 사적을 소개하고 총회역사위원장 정우 목사가 신림교회 이전규 목사에게 증서 를 전달했으며, 이어 광주YMCA오방기념회 이사장 최영관 장로(광주북문교회)와 전주현 암교회 최원탁 목사가 축사를, 한국기독교문 화유산보존협회 사무총장 임영근 목사가 격려 사를, 신림교회 정수범 장로가 인사를 전했다.

이어진 제막식에서는 호남신학대학교 강성 렬 교수가 기도처에 대해 소개했고, 광주벧엘 교회 리종빈 목사가 기도한 후 제막선언과 함 께 이 기도처가 한국기독교사적 제35호임을 알리는 현판의 가림막이 걷혔다.

역사위원장 정우 목사는 많이 늦었지만, 늦게나마 (오방 기도처가 사적에) 지정된 것 을 축하한다지역사적 차원을 넘어 한국 교회사적으로 기억하고 알려야 할 책임이 우 리에게 있다. 광주 최초의 교인이자 장로, 목 사로서 오방의 삶과 정신이 계속 발굴되고 계 승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역사위원회 전문위원 손산문 목사는 한 국교회와 역사에서 비주류로 인식돼 왔지만 그 족적은 결코 작지 않다. 오늘 지정된 이 유 산이 담지하고 있는 오방의 신앙정신과 삶이 우리 기억 속에 환원되어 한국교회에 빛을 발 하는 역사가 될 것이다. 지역을 뛰어넘어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역사가 될 것이다라며 이번 사적지정을 통해 오방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 와 조명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또 손 목사는 총회기록을 소개하며 최흥 종 목사의 행적에 대해 몸연보라고 표현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신앙을 한마디 로 말한다면 머리신앙이 아니라 몸신앙이다. 신앙을 몸으로 살아내는 신앙이다. 그의 몸신 앙이 한국교회에 사표가 될 것이다라고 강조 했다.

머리신앙만 가득한 오늘날 한국교회에 온 몸으로 복음을 실천했던 오방 최흥종 목사의 삶이 전하는 울림이 꽤 크다.

/한지은 기자

 

▲'오방수련원'에 대한 총회 한국기독교사적지 지정예식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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