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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들에게 들려주는 6.25 이야기
[[제1510호]  2016년 6월  25일]

6.25전쟁은 우리나라가 유지되느냐, 소멸되느냐의 중대한 역사의 기로에 선 전쟁이었다. 중국과 러시아와 일본의 계속적인 침략으로도 망하지 않은 우리나라가 이제 또 한 차례의 중대한 역사적 도전을 맞게 된 것이다. 6.25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나라의 생사에 관한 아슬아슬한 역사가 내포되어 있다. 만일 6.25전쟁에서 우리가 패전하였더라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영영 존재할 수 없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6.25 전야에 이 할아버지는 동료학생 몇 사람과 함께 서울을지로에 있는 서울사대 김 교수님의 연구실에 있었다. 초저녁부터 북쪽에서 쏘아대는 대포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남쪽을 향해 간헐적으로 쏘는 대포소리가 점점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스산한 저녁이었다. 북쪽에 고향을 둔 사람들에게는 공산당에서 쏘아대는 대포소리는 곧 죽음의 공포증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었다. 연구실에서 마지막 시간을 함께한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를 포옹하면서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교문을 빠져 나온 학생들은 서로들 말없이 헤어진 후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길가에는 인기척이 드물었다. 나는 허둥지둥 왕십리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허름한 한국전력 기숙사에 피난민들이 모여 간신히 살아가고 있었던 그곳엔 홀어머니가 눈이 빠지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모자는 남쪽으로 피난 가지도 못하고, 서울시내 이곳저곳을 전전하면서 참으로 어렵고 위험한 순간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공산당원들이 밤, 낮으로 젊은이들을 색출하여 의용군으로 잡아가고 있었던 긴박한 상황이었다. 이 무서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보호해 주신 것이다.

그 후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은 6.25전쟁의 전세를 급격하게 변경시켜 공산군은 지리멸렬 후퇴하게 된 것이다. 휴전이 성립된 후 나는 대한민국 국군에 학도병으로 자진 입대하게 된 것이다. 물론 징병연령도 지났고, 아무런 병역의 의무는 없었으나 현재 조국이 당면한 위기가 나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입대 후 강추위 속에서 일주일 동안 대구 어느 초등학교 교실 바닥에서 덮을 것으로 몇 사람이 볏집 거적 한자리씩을 배당해주는 상황이었다. 깨진 유리 창문으로 몰려드는 겨울바람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칼바람의 추위였다. 간신히 훈련을 마친 우리는 각각 소속부대로 배정되었는데 나는 목이 부은 채 간신히 육군소위 계급장을 달고 제15육군병원으로 배치되어 부산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홀어머니를 정처 없이 홀로 남겨두고 떠나는 외아들의 애절한 심정은 지금도 애절한 기억을 되살리곤 한다. 그 후 육군 제1사단 11연대에 배치된 후 고랑포 전투 등 격렬한 전쟁을 경험하면서 전진

과 후퇴를 번갈아 가며 싸운 경험이 생생하다.

정훈장교(政訓將校)로서 최전선 팍스홀(fox hole)에서 적의 동정을 살피며 경계근무를 하던 한 병사와 담배를 나누며 무언의 대화를 나누던 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나의 귀중한 삶의 경험이었다. 그때 나의 상의 앞주머니에는 언제나 작은 영어 성경책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성경책을 가슴에 품고 최일선에서 경계근무를 할 시절의 충만함은 무엇이었을까? 은혜의 순간들이었다. 30대의 감동을 90대가 넘어서도 생생하게 느끼는 믿는 자의 인생경로는 참으로 놀랍고 기이한 사실이다. 감동의 파장이 조금도 약해지지 않는구나! 믿음의 순도(純度)가 조금도 변함이 없다는 말이지. 나는 이렇게 청년을 살아오고, 중년을 살고 지금 노년을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간에 인생의 고저(高低) 굴곡(屈曲)의 여정들은 힘들었으나 나의

인도자는 한결 같이 손을 잡아 주셨어. 나의 믿음의 인생경로를! 놀랍지. 내가 내 인생을 살아 온 줄 아느냐? 아니야, 결코 아니지! 그것이 은혜란 말이다.

학도병으로서 5년 동안을 군복무를 한 후 육군 대위로 제대하게 되었다. 그간 서부전선과 유엔군 참전을 기념하는 훈장들이 제대 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추서되었다. 그동안 나는 학도병으로서 조국의 의미를 깊이 체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6.25전쟁의 의미를 되씹으며 동족간의 적대행위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동족간의 싸움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싸움으로 해석하게 되었다. 동족이 적이 아니라 공산주의가 적인 것이다. 붉은 공산주의는 우리 조국에서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쓸어 버려야 하는 적(敵)인 것이다.

나는 세계지도를 매일 쳐다보면서 사명의 나라를 확인하고 있다. 이는 세계지도의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나라이다. 그나마 지금은 국토의 절반이 분단된 상황이나, 머지않아 통일이 될 우리의 조국이다. 이는 오늘의 현대사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양의 상징과 같은 의미를 느끼게 한다. 역사의 주체(主體)는 인간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움직이시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의 배역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 소명된 무리들이 맡게 되는 것이다. 아무나 힘이 있고, 세력화된 집단이 역사의 주역이 된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여기에서 한국을 사명의 나라로 확인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역사관(歷史觀)이다. 애국심 이전의 소명감(召命感)이다. 나는 그 당시 한국은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땅이요, 대한민국은 우리의 조국이란 신념이 대단히 강하게 작용하였던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지금 나는 매일 지도(地圖)놀이를 하고 있다. 즉 한국이란 그릇 속에 세계를 담아 보는 것이요, 세계 속에 한국을 담아보는 놀이이다. 이런 놀이를 하다 보면 나라의 국토가 크고 작음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구가 많음과 적음이 국력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 군비의 많음이나 첨예화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의 역사관으로 무장하고, 우리의 애국심을 신앙화하는 일이다. 믿음 안에서 나라사랑을 의지화(意志化)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라사랑의 믿음과 행동과 결단이 없는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도움을 주실 것인가?

사명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뒷받침하시는 나라이다. 그 역사적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첫째, 북한 공산주의 군대가 남한을 공격한 뉴스가 세계로 전파된 후 트루만 미 대통령은 여름휴가 중이었다. 그런데 그는 이 소식을 듣고 즉시로 유엔안전보장 이사회를 소집한 것

이다. 그때 소련은 이사국이었으나 대표가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의결은 만장일치제를 채택하고 있었는데 소련의 불참으로 유엔군의 한국파병이 기적적으로 가결된 것이다. 둘째로 유엔군이 한국 땅에 상륙하려면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는데, 공산군은 서울을 탈환하고, 남쪽으로의 진군을 잠시 멈춘 것이다.

이리하여 유엔군의 상륙이 요의하게 되었다. 셋째로 세계 전사(戰史)상 서해안으로 방대한 군대를 상륙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는데, 미군을 통해 이를 가능하게 하신 것이다. 인천으로 상륙한 유엔군 부대는 곧 중앙청사에서 붉은 깃발을 내리고 태극기를 계양한 한편, 북으로 진군하게 된 것이다. 북한 공산군은 지리멸렬하게 흩어져서 북으로 도보행진을 하고 있었던 것을 필자도 목격한 사실이다. 그리고 완전 파괴된 나라, 외국기자의 눈에 비친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어날 수 있을까?” 하던 완전 폐허의 땅에서 약 70년 후에 장미 꽂을 피우고 있으니 이는 무슨 연고인가? 우리의 자랑거리인가? 하나님의 섭리인가? 대한민국의 역사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다. 우리는 거저 생겨난 무의미한 민족이 아니다.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나라요, 하나님의 도구로 쓰일 국민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사명을 깨닫고 실천하는 나라의 국민들임을 우리 조상들의 간증에서 깊이 감응하게 된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이 동산에 할 일 많아 사방에 일꾼을 부르네” “일하러 가세 일하러가 삼천리강산 위해”. 주권과 국토와 역사, 이 세 가지는 민족주의가 주장하는 기본 조건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하에서 민족과 국가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주권 아래 주어진 국토에서 하나님의 역사의 일꾼임을 자인하게 되는 것이다. 주권과 국토와 역사는 우연이 아니다. 주어진 여건들이다. 이를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에 부합하게 전개해나가면 역사적 순리를 걸어가는 것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역사의 순리를 거역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휴머니즘의 역사관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섭리 사를 믿기 때문이다.

- 장진호 장로<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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